책명 :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
지은이 : 정재찬 교수
어제도 별생각 없이 하루를 습관대로 살았다.
가끔은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. 깊은 생각은 별안간 어떤 결심을 낳는다. 결심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. 나이가 들수록 그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. 그러나 어제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. 그러한 동기를 가져다주는 책 읽기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.
지난 3월에 “2021 원북원부산 올해의 책”이 선정되었다. 일반부 부문에 정재찬 교수님의 <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>이 뽑혔다. 이 책에서 지은이는 여러 편의 시를 소개한다. 그 시를 통해 힘들게 살아가는 독자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나아가야 할 길을 안내한다.
그래서 이 책은 시로 듣는 인생론이다.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고, 슬쩍 미소 짓다가 혹은 눈물도 훔쳐보며, 때론 마음을 스스로 다지고 때론 평화롭게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.
이 책에 소개된 시를 읽으며 특히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다섯 편을 옮겨본다.
배추 절이기 (김태정)
아침 일찍 다듬고 썰어서 / 소금을 뿌려놓은 배추가 / 저녁이 되도록 절여지지 않는다 / 소금을 덜 뿌렸나 / 애당초 너무 억센 배추를 골랐나 / 아니면 저도 무슨 삭이지 못할 / 시퍼런 상처라도 갖고 있는 걸까
점심 먹고 한 번 / 빨래하며 한 번 / 화장실 가며오며 또 한 번/ 소금도 가득 뿌려주었는데
한 주먹 왕소금에도 / 상처는 좀체 절여지지 않아 / 갈수록 빳빳이 고개 쳐드는 슬픔 / 꼭 내 상처를 확인하는 것 같아
소금 한 주먹 더 뿌릴까 망설이다가 / 그만, 조금만 더 기다리자 / 제 스스로 제 성깔 잠재울 때까지 / 제 스스로 편안해질 때까지
상처를 헤집듯 / 배추를 뒤집으며 / 나는 그 날것의 자존심을 / 한입 베물어본다
** 발효는 기다림의 결과이듯, 사랑도 기다림이 미학입니다. 사랑하기 때문에, 저러다 혹시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초조하고 조급해지게 마련이지만, 사랑하기 때문에 차라리 소금을 내 가슴팍 상처에 뿌리는 한이 있더라도 굳게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.
성장 (이시영)
바다가 가까워지자 어린 강물은 엄마 손을 더욱 꼭 그러쥔 채 놓지 않았습니다. 그러다가 그만 거대한 파도의 뱃속으로 뛰어드는 꿈을 꾸다 엄마 손을 아득히 놓치고 말았습니다. 그래 잘 가거라 내 아들아. 이제부터는 크고 다른 삶을 살아야 된단다. 엄마 강물은 새벽 강에 시린 몸을 한번 뒤채고는 오리처럼 곧 순한 머리를 돌려 반짝이는 은어들의 길을 따라 산골로 조용히 돌아왔습니다.
** 이제부터는 너의 삶을 살라고, 품을 떠나가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, 속울음을 삼키며 단호히 돌아서야 하는 것. 자녀의 올곧은 성장을 위해 돌봄과 기다림과 떠남의 과정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몫 아니었을까. 흐르는 강물처럼 말입니다.
아름다운 비명 (박선희)
바닷가에 앉아서 / 파도소리에만 귀 기울여 본 사람은 안다 / 한 번도 같은 소리 아니라는 거 / 그저 몸 뒤척이는 소리 아니라는 거 / 바다의 절체절명, / 그 처절한 비명이 파도소리라는 거
깊은 물은 소리 내지 않는다고 / 야멸치게 말하는 사람아 / 생의 바깥으로 어이없이 떠밀려 나가 본 적이 있는가 / 생의 막다른 벽에 사정없이 곤두박질쳐 본 적 있는가
소리 지르지 못하는 깊은 물이 / 어쩌면 더 처절한 비명인지도 몰라 / 깊은 어둠 속 온갖 불화의 잡풀에 마음 묶이고 발목 잡혀서 / 파도칠 수 없다고 큰 소리 내지 못했다고 / 차라리 변명하라
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/ 저 파도 소리 때문인 것을 / 너를 사랑하는 이유도 그러하다
** 우리 인생도 그럴까요? 소리 내어 울어도 본 그 아픔들,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둔 그 고통들이 언젠가는 아름다운 꽃으로, 아름다운 시로 피어날 수 있는 걸까요?
나무학교 (문정희)
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/ 해바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/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/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/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/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/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놓을 때 / 사랑한다! 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/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/ 우어요! 하며 숲을 배경으로 /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/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/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/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/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/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
** 세월은 안으로만 새기고,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, 그리하여 내년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.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.
독락당 (조정권)
독락당 獨樂堂 대월루 對月樓 는 /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/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/ 누굴까,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/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
** 벼랑꼭대기에 암자가 하나 보입니다. 이름하여 독락당 대월루 마주하는 것은 달뿐, 홀로 지내는 곳. 그러나 그는 즐긴다 하고 있습니다. 마음속에 하나쯤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습니다. 어느 누구도 흔들 수 없는, 세상 어느 유혹도 건드릴 수조차 없는, 오로지 내가 나만을 기준 삼아 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곳, 거기에 우리의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.
맛집 소개할게요!!
▦ 소바야일미야 : 051-742-0092
해운대 해수욕장 가까이 오시면!!
해운대구청 인근
돈까스 & 소바 전문집
11:00~21:30
▦ 카페 그레이스 grace : 051-913-0333
남구 도서관 입구
고급 커피 & 디저트
11:00~19:00
뛰어난 커피맛, 톡톡 & 책읽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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